16세기 말, 여진족은 몽골어와 몽골 문자를 공문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몽골 문자는 사실 복잡한 역사적 계보를 따라 발전한 문자 체계의 일부로, 그 기원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출발해 아람 문자, 시리아 문자, 소그드 문자, 위구르 문자를 거쳐 몽골 문자로 이어진다. 거란족은 몽골족에 더 가까운 민족이나 중세 여진족은 거란 문자를 사용했다. 금나라 시기에는 거란 문자의 영향을 받아 여진 문자가 사용되었으나, 후금이 세워질 무렵에는 여진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골 문자는 만주어의 모든 소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다. 이에 1599년, Nurhaci는 Erdeni-bakxi와 Gagai-jarguci에게 새로운 문자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만주 실록에 따르면 Nurhaci는 음운학적 감각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만들어진 문자가 바로 1632년까지 사용된 무권점 만문(tongki fuka akv hergen)이다. 이 문자는 구만문이나 노만문이라고도 불렸다.
천명년간(1618-1626)과 천총년간(1627-1635) 사이에 쓰인 문헌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632년 Dahai가 청태종의 명을 받아 무권점 만문에 점(tongki)과 원 또는 권(fuka)을 추가해 만주어의 모든 음운이 하나의 기호로 정확하게 대응되도록 수정했다. 이를 유권점 만문(tongki fuka sinsaha hergen) 또는 신만문이라 부른다. Dahai는 또한 중국어(근고한어)와 범어(Sanskrit) 같은 다른 언어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10개의 추가 문자를 도입했으며, 이를 바깥 글자(tulergi hergen)라 불렀다. 이 문자는 주로 한어 인명이나 호칭, 관직명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유권점 만문이 제정 및 공포된 것은 1632년 3월 7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당시 기록인 구만주당을 보면 그 날을 전후로 표기에 뚜렷한 변화가 보인다. 그러나 3월 7일을 경계로 구만문과 신만문의 모든 특징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이 날이 분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1632년 전후로 상당 기간의 과도기적인 문자 사용이 나타난다. 아마도 1632년의 문자 개량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닌 점진적으로 축적된 개량의 방안들이 1632년에 정리 및 공포된 것으로 보인다.
1640년대에 접어들면 기본적인 문자의 자형이나 그 이용 방법에 있어서는 완전히 정비된 유권점 만문의 모습이 관찰되고 1641년경에 이르면 유권점 만문은 기본적인 자형과 그 사용 방법에 있어 완전히 확립된 상태에 이르렀다.
가장 널리 쓰이는 만주어를 latin 문자로 나타내는 방법은 목인덕(穆麟德)의 방식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면 듣게 되는 프로이센 출신의 조선의 통리 아문 참판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의 조선식 이름이 바로 목인덕이다. 목인덕은 외교보다는 언어학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만주어 문법서(Manchu Grammar, 1892)를 집필하여 만주어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당연히 저작권이 만료되어서 조금만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